영상제작사(프로덕션) 선정할 때 흔히 하는 실수 (21.4.6 updated)

대체로 의뢰자분은 어떤 업체를 만나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 기준을 명확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드물게 가끔씩 그렇지 않은 분이 있습니다. 좋은 제작사의 지원을 받아 놓고도, 프로젝트에 적합한 감독님과 미팅을 진행하고도, 잘못된 최종 결정을 내리는 분이 정말 간혹 있습니다. 선택의 과정에서 어떤 실수가 있었던 것일까요?

대표적인 실수 사례를 정리합니다.

 

| 견적만으로 선정하는 실수

속도·효율·양이 중요한 영역을 Quantity라 부릅니다. 반대로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중요한 영역을 Quality라 부릅니다. Quality가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Quantity의 태도를 가지는 것은 잘못입니다.

재화(제품)시장에서는 Quantity의 관점으로 선택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입니다. 제품은 항상 동일하기 때문에 가격만 비교해도 충분합니다. 하지만 서비스시장에서는 이 방식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같은 예산으로 영상을 만들더라도 어떤 업체에게 맡기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산을 줄이려는 욕심이 지나치면 프로젝트의 예산 전체를 낭비하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영상제작은 [전략-기획-연출-제작] 네 단계를 거쳐 진행됩니다. Quality적인 측면에서의 결과물은 [기획-연출]단계에서 판가름 납니다. 하지만 견적서는 대부분 [제작]의 범위에 해당하는 항목들만 채워져 있습니다. 견적서로만 판단한다면 정작 중요한 기획과 연출의 역량은 평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행정처리 절차상 비교견적이 꼭 필요한 의뢰자분이 많습니다. 검토한 타 후보 업체보다 견적이 무조건 낮아야 한다는 조건은 기존의 물품구매팀(상품,재화)를 주로 진행하던 업무의 관행으로 난처해하는 의뢰자분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 적합한 업체를 먼저 선정한 뒤 행정처리를 위해 필요한 비교견적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하면 대부분 업체측에서 준비해주는 편입니다.

 

| 포트폴리오만으로 선정하는 실수

포트폴리오만으로만 판단한다는 실수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하는 실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표면적인 포트폴리오에는 [전략-기획-연출-제작]의 네 단계 중에서 [연출-제작]의 단계 밖에 드러내지 못합니다. 제작이력을 관리하는 업체가 [전략-기획]측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설명하고 기존 고객의 입장에서 어떤 활용 및 성과로 이어졌는지 설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업체가 설명에 서툰 편입니다.

영상을 제작할 계획을 세우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비즈니스의 수단으로 영상이 필요한 상황이시기에 “전 의뢰자는 그 영상을 어떻게 활용했나요?”, “그 영상을 기획하기 전에 의뢰자는 어떤 것을 요구했나요?”정도의 질문을 통해 포트폴리오 넘어의 [전략-기획]적인 측면을 파악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한국말로 하면 ‘제작이력’입니다. 이력정보를 토대로 경험 / 기술 / 인프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의뢰자분이 만들어야 하는 영상과 완전히 똑같은 영상은 없을 것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제시된 영상이 어떤 측면에서 진행하려고 하는 프로젝트와 연관성이 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포트폴리오를 제시하면 의뢰자는 당연히 “이전에도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이정도 만들겠지”라고 생각하게 되지만 업체 측에서는 다른 의미로 제출한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단순 스태프로 참여했던 프로젝트임에도 포트폴리오로 사용하는 경우, 심지어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지인의 포트폴리오를 빌려 영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담당자가 해당 프로젝트에 얼만큼 관여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이번에 수행하게 될 프로젝트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물어보세요.

전 직장에서 진행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포트폴리오로 사용할 경우, 당시 근무했던 조직의 인프라(인적자원, 장비, 기술 등)로 만들어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에서는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같은 회사라도 다른 담당자가 진행한 결과물일 경우 [연출]과 같은 개인의 감각적인 역량이 큰 영향을 미치는 부분에선 다른 결과물이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 평가 기준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 실수

저는 물건을 살 때 쓸데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지난 달에는 이만원도 채 되지 않는 자전거 장갑을 하나 사려다 여섯 시간을 썼습니다. 제가 장갑을 고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디자인으로 20개 상품을 모두 검토 > 가격으로 20개 상품을 모두 검토 > 리뷰점수 * 20 > 판매자 업력 * 20 > 판매자 평판 * 20 > 신규 출시 순 * 20 > 누적 판매량 * 20……… 저는 6시간 동안 최소 2,000번 이상의 판단을 내렸을 것입니다.

최고의 장갑을 골랐냐고요? 아니요. 최종 단계에서 탈락한 장갑도 꽤 괜찮았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한켠에 남아있습니다. 이것을 선택의 역설이라 합니다. <> <TED> 선택지가 없어서가 아니라, 선택지가 많을 때 발생하죠. 선택하지 못한 후보 중에서도 괜찮은 곳이 있었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다른 선택지의 장점을 포기하면서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좋은 선택지가 많을수록 아쉬운 마음은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업체를 선정할 때 검토해야 하는 기준은 다양합니다. ‘관련 경험이 있는 업체를 만나야겠다’, ‘비슷한 고객을 많이 상담해본 담당자를 만나야겠다’, ‘특정 인프라를 갖춘 제작사를 만나야겠다’, ‘견적을 낮게 제시하는 곳을 만나야겠다’, ‘열의를 가진 담당자를 만나야겠다’……. 이런 기준은 의뢰자의 상황에 따라 수도 없이 많을 것입니다.

선정 기준을 미리 결정해둔다면 판단을 병렬적으로 한 단계로 처리할 수 있습니다. 기준을 허술하게 세워두었다가 추가적인 검증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하게 된다면 직렬적으로 판단을 처리해야 합니다. 제가 장갑을 고를 때 6시간 동안 2,000번의 판단을 한 것처럼, 3일 만에 끝낼 수 있는 업체 선정 절차가 한 가지 검증 절차를 추가할 때마다 반복하며 3달을 넘겨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3달이 지난 뒤에는 과도하게 투입된 업체선정과정에서의 시간과 노력을 매몰비용으로 여기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선택의 역설이 더욱 강하게 발생해 결국 어떤 업체를 고르더라도 불만족할 것입니다. 다른 회사는 이미 프로젝트를 완수하고 뒷풀이를 하고 있을 텐데요.

제가 장갑을 살 때처럼, 시장에서 콩나물을 살 때처럼, 회사일을 해선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개인이지만 업무를 할 때만큼은 기업의 방식대로 일을 해야 합니다. 기업의 의사결정에선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옳은 결정은 딱 하나만 존재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참고)

심사를 진행하기 전에 선정기준을 준비할 때 도움될 글 <미팅심사단계에서 제작사와 나누면 좋은 이야기들(질문리스트)>

 

| 종합 평가에 지나치게 매몰되는 실수

평가 기준을 미리 결정하지 않는 실수도 있지만, 정반대로 평가에만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좋은 업체를 찾아야 한다는 의욕이 지나칠 때 업체를 평가하는 과정에 지나치게 깊이 빠져버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내 프로젝트를 가장 잘 수행할 수 있는’ 제작사를 찾는 본래의 임무는 망각한 채로, 업체들의 수준을 평가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평가 항목을 사전에 정해두고 점수표를 만들어서 매긴 뒤 합산해보는 방식입니다. 이 방식을 MCDA(Multiple-criteria decision analysis)라 부릅니다. 이 방식은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기 어렵고, 여러 기준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 경우 적합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를구입할 때라면 가격, 연비, 승차감, A/S편의성, 기업이미지와 같은 기준을 평가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아웃소싱 업체를 찾는 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습니다.

비드폴리오는 모든 파트너스를 40가지 정도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평가, 관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객관적인 지표로 매겨진 총점이 의미있는 숫자일까요? 의미있는 숫자였다면 저희는 전형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조건 총점이 높은 업체를 바로 연결했을 것입니다. (저희는 이 수치를 기준미달 업체를 구분하기 위한 용도로만 쓰고 있습니다.) 업체가 내 프로젝트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내 프로젝트의 내용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업체가 절대적으로 항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요인이 아닙니다.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기 위한 절차가 오히려 비합리적인 결론으로 도달하는 경우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나치게 평가에 매몰되어선 안 되겠습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넓은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판단할 필요도 있습니다.

 

| 문서 제출을 과도하게 요구하는 실수

미팅을 진행한 뒤,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하면서 추가적인 문서 작성(제작기획안 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입니다. 제작에 착수되기 전에 최종 결과물에 대해 가시화하기 위해 필요하기도 하며, 수많은 제작관계자들이 같은 목표를 향해 협력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팅을 진행한 후에도 업체를 선정하지 못해 추가적인 문서 제출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입니다. ①결정장애+과잉의존입니다. ②좋은 업체 걸러내는 절차입니다.

직접 제작사를 찾는 분들이라면 절차가 조금 다를 수도 있지만, 비드폴리오를 통해 프로젝트를 등록하고 제작사를 만나는 절차를 거치고 있으시다면, 미팅을 진행할 때까지 5~6 단계의 프로젝트 구체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상담을통해/기획과정을통해/프로젝트공고(RFP)작성을통해/수행업체의지원서를통해/미팅을통해] 이 많은 과정을 거치고 나서도 어떤 업체를 골라야 할지 판단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어떤 절차를 더 추가하더라도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입니다.

이 5~6단계의 절차를 거치며 [의뢰자의 필요]와 [수행업체의 계획] 사이의 빈틈을 메워나갑니다. 빈틈이 모두 메워진다면 최종적인 결과물과 기대성과가 가시화될 것이고, 결정을 내릴 수 없다면 빈틈이 메워지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미팅을 하고도 빈틈이 발생했다면, 어떤 문서를 추가제출하더라도 그 빈틈 채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그나저나, 이 빈틈을 채우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요? 저희든 수행업체의 제작PD든, 일을 도와드릴 순 있지만 대신해드릴 순 없습니다. 팔짱끼고 “어디 한 번 더 제안해봐”라는 태도를 가진다면 이 빈틈은 영원히 채워지지 못할 것입니다.

업체를 선정하고 계약을 체결했다면 추가적인 문서 작성(제작기획안)은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하지만 심사 단계를 계속해서 추가하고, 평가만 반복하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제작기획안은 계약서를 쓰기 전 단계에 제출되기도 하는데 최소한의 설득을 위해 작성된 간소화된 버전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계약을 체결하고 선금까지 지불된 상태라면 더욱 구체적이며 치밀한 수준까지 내용을 채울 것입니다.

미계약, 미지불 상태로 제작기획안을 요구하는 것은 갑질일 뿐더러, 좋은 업체를 선정 과정에서 제외시키는 절차입니다. 좋은 업체들은 갑질을 감내하지 않습니다. 미련없이 떠납니다. 눈길도 주지 않으며 단골 고객에 집중합니다. 과도한 적극성과 열정과 손해를 강요하는 절차를 만들어낸다면, 결국 손님이 없고 시간도 남아도는 업체들만 모집하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 문서를 가장 열심히 쓴 업체를 선정하게 될 것인데, 그 업체는 분명 일이 없어서 일손이 남아 도는 업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수억~수십억원대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광고 프로젝트의 경우 피칭까지 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광고 산업에서도 이와같은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 탈락보상금rejection fee제도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에서 좋은 인재를 뽑기 위해 면접비를 지급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수개월간 기획에 들어간 노력에 비하면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금액입니다. 실리적으로 보상을 하기보단 비즈니스 전략을 함께 고민해준 것에 대한 감사, 기획의 전문성에 대한 존중 등의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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